축구 그 이상의 소식/호이링_칼럼

지역주의와 내셔널리즘은 동일선상에 있다.

호이링 2012. 10. 16. 19:10

도메스틱과, 내셔널리즘을 가지고 말하는 모 봉궈에 대해서~~가장 물어보고 싶은것은 과연 봉궈는 내셔널리즘을 갖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그리고 진정한 도메스틱 즉 지역연고를 추구하고 있는 스포츠가 어떤 스포츠인지 한번 물어보고 싶다. 내셔널리즘을 강조하기 위해서는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하고 있는 보편적 스포츠라는 기본전제가 있어야 하고, 그 전제에 제일 합당한 종목이 바로 축구라는것이다


한국만이 축구나, 일부 스포츠종목에 내셔널리즘이 강조되어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는데 이는  총칼을 들고 상대방을 제압하는 전쟁을 제외하고 합법적으로 한 국가가 다른 경쟁국가보다 상대적 우월감과 자부심을 얻는데에는 스포츠 만한 것이 없고, 이런 특징을 잘 알기에 멀리 아프리카의 이디오피아에서부터, 중미 베네수엘라, 유럽 핀란드, 그리고 아시아의 태국등이 올림픽이나, 월드컵,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등에 열광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근데 이 봉궈가 주장하고 있는 한국은 유별나게 내셔널리즘이 강하다라고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우선 다른국가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한번 물어보고 싶다? 태국의 스포츠는 내셔널리즘이 강하지 않다고 누가하던가? 일본의 스포츠는 내셔널리즘이 강하지 않다고 누가하던가?


스포츠로서 내셔널리즘의 발단은 국가의 발전단계와 상관관계가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조선의 멸망과 대한제국의 멸망 그리고 조국의 분단, 그후 북한과 대치되는 상황에서의 군부독재, 그리고 그후 문민정부시대를 지다, 지방자치단체로 발전한 것을 살펴봐야 한다.


우선 대한제국의 멸망과 일제강점기에는 오로지 한민족이 어떻게 하면 생존을 할 수 있고, 이를 타개해야 할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했던 시기였다. 이때는 전라도, 경상도, 평안도, 함경도 할 것 없이 민족의 이름하에 하나로 뭉칠수밖에 없었고, 그 이면에 축구라는 종목은 민족의 자부심을 표출하기에 좋은 도구였던 것이었다. 


이후 해방이 되었지만 북한과 대치되는 이데올리기의 혼란속에 남쪽의 지도자들은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게 하나의 일체감을 형성할 수 있도록 통일된 이데일로기를 강요했고, 적절한 도구로서 내셔널리즘이 강한 축구라는 도구가 활용되었다. 이후 군사독재기에도 마찬가지였고,정부에 대한 국민의 반감을 다른 곳으로 표출하기 위해 프로스포츠가 도입이 되었다. 


반면 이시기까지의 야구를 보면 야구는 내셔널리적인 정치적 도구로 이용해먹기에는 태생적으로 한계에 있었다. 국가간 경쟁이 없었고, 일본과의 경쟁력도 월등히 떨어졌단 시대에 야구는 정치가들이 국민을 하나로 묶기위한 도구로서는 적절하지 못했다. 일제시대때부터 보급되었던 야구는 미군정시대를 거쳐 고등학교 야구로 정착이 되었고, 내셔널리즘의 성격보다는 지연, 학연을 이어주는 하나의 도구로 사용되었고, 이는 향후 프로야구의 지역연고 도입에 탄력을 받을 수 있는 그런 배경이 되었다. 


군부시대에 프로스포츠가 태동을 하였지만 프로축구는 역시나 내셔널리즘의 성격을 강요받았고, 프로축구는 여기에서 자유로울수 있었다. 프로축구의 태동시기인 83년에는 야간경기를 할 정도로 정부에서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지만 88년 올림픽에 프로선수가 참여를 못한다는 IOC의 결정에 따라 정부에서는 프로축구에 대한 메리트를 별로 느끼지 못했다 이때부터 에너지 절약 정책의 일환으로 프로축구 야간경기를 금지시켰고, 그때 이후 국민과 다가서는 프로축구를 볼수 없었다.~~~ 이런 암흑기가 계속된 후 드디어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서게 되었고 역사적인 선출에 의한 지방자치제도가 실시되게 된다


이후부터 이전과 다른 프로축구개념이 발생한다. 지방자치단체가 중심이 되는 실업팀의 창단과 시민축구단의 창단이다. 물론 이전에도 프로축구 구단이 있었지만, 이는 정부의 반 강요에 의한 창단으로 대기업 위주의 팀이었다  1989년 성남일화가 창단된 이후 4년만인 1983년에 전북다이노스, 1994년에 전남드래곤즈, 1995년 수원블루윙즈가 창단을 하게 된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가 정착을 하기 전이었고, 이 시기에는 2002년 월드컵을 개최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구단을 창단한 면이 있지 않아 실제 프로축구 팀의 자발적 조직이라는 것과는 상당한 괴리감이 없지 않으나


하지만 1990년 중반에는 진정한 지역연고의 개념이 아닌 정책적인 지역연고의 개념으로 정치하는 사람들이  연고를 인위적으로 옮기는 경우도 잦았다. 


이후 지방자치단체는 점점 발전이 되었고, 대한민국 최초의 시민구단인 대전시티즌이 1997년 창단하기에 이른다. 이때부터 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는 안정적으로 이끌어지게 되었고, 성공적인 월드컵 개최 이후 여기저기서 시민구단이 창단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이때는 국민적인 관심이 축구로 이어지게 되었고, 언론은 이를 활용하기 위해 적극적인 보도로 화답을 했다..


하지만 확 타오르는 불꽃은 쉽게 꺼지는 법 경기장인프라만 형성이 되었고, 지역연고개념이 있는 축구도시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많은 국민들은 축구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지 못하게 되었고, 이후 제도적으로 개선된 모습으로 프로축구를 기대하던 팬들의 염원과는 반대로 협회와 프로축구연맹의 행정미숙으로 프로축구는 국민 대부분의 기대치와는 달리 더딘 발전을 하고 있어 많은 팬들이 외면을 하였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국민의 기대치가 높아진 만큼 발전이 더딘 국내축구에 대해서 각 지방자치단체는 오히려 시민구단을 창단하거나 아니면 내셔널리그 소속의 시민구단을 창단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 경기를 지켜보던 많은 팬들이 국내축구의 새로운면을 눈뜨기 시작했다. 



지방자치단체가 시작되면서 이전에 대한민국정부가 FC 대한민국이 필요했던 것 처럼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FC시민구단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내가 여기서 하고자 하는 말을 요약하면 스포츠의 존재의 이유는 개인의 체력증진과 정신건강 증진이라는 이유와 공정한 경쟁을 통해 건전한 가치관을 형성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를 배운다는 목적이 있지만 


이는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이유이고, 스포츠를 통해 타인에 대한 우월감을 느끼고, 그로 인한 자신의 존재가치를 각인시키며, 나와 집단의 성취감을 얻고자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가 포함이 되어 잇기 때문에 스포츠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나와 집단은 떨어질수가 없는 것이고, 아무리 지역주의와, 내셔널리즘으로 구분을 한다해도 그것은 규모의 차이일 뿐이지 지역주의와 내셔널리즘은 동일하다는 것이다. 


야구는 필연적으로 국가를 내세워 경쟁을 할수가 없어서 내셔널리즘이 없었던 것 뿐이었고, 축구는 태생때부터 정치적으로 내셔널리즘을 활용하기에 아주 유용한 도구였기에 이를 정치가들이 활용했을 뿐이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착각은 바로 여기에 있다.~~


앞으로는 내셔널리즘과 지역주의를 표방하는 스포츠가 충분한 경쟁력을 갖고 국민들에게 강한 어필을 할수 있을것이다. 그 예는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로 양분되는 극한 지역적 특성을 가진 두 클럽이 스페인이라는 이름하에 세계를 정복했을때 하나가되는 모습을 지켜보면 쉽게 알수 있을것이다. 


야구팬들이여 스포츠와 레져를 착각하지 마라~~~국내축구가 승강제가 정착이 되고 진정한 지역스포츠로서 성립이 되었을때~~~가장 먼저 경쟁력이 없어질 종목은 어떤 종목이 될지 알것이다. 


아래 사진의 카퍼레이드의 성격은 국가를 대표하느냐 지역을 대표하느냐의 차이이지 그것이 미치는 개인의 감정은 동일하다는 것을 알기 바란다. 


[스페인의 월드컵 우승 카퍼레이드]

[세인트루이스의 MLB 우승 카퍼레이드]




[포항의 ACL카퍼레이드 및 포항시민의 열렬한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