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그 이상의 소식/포털_Good축구컬럼

[김환의 A-리포트] ②필리핀 | 성공을 준비하는 다문화-다국적 리그

호이링 2017. 2. 5. 15:24

어느순간 엔가 중요한 가치로 있는 명 컬럼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보존의 의미로 남기게 되었음을 알립니다. 만약 본 글에 대해 보실려면 아래의 링크를 클릭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http://sports.new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516&aid=0000000026&redirect=true


국내 대학선수 가운데 10% 정도만 프로에 진출한다. 평균적으로 매해 300~400명이 국내취업에 실패한다. K리그에서 방출된 선수와 졸업 이후에도 팀을 찾는 선수까지 더하면 그 숫자는 수천 명에 이른다. 과거였더라면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축구를 포기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최근 분위기는 다르다. 국내 팀에 들어가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눈을 조금만 돌리면 가까운 곳에 더 많은 기회가 있다. 한국선수가 뛸 수 있는 아시아 리그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중소 규모의 리그에서도 아시아쿼터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실력과 성품이 준수한 한국선수를 찾는 구단이 늘어나고 있다. 그들이 왜 한국선수를 원하며 어떤 생활 환경에서 지낼 수 있는지, 리그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했다. [김환의 A-리포트] 두 번째 나라는 필리핀이다. ‘농구와 복싱의 나라’ 필리핀에서 축구는 어떻게 자리 잡고 있을까.


■ 기본 정보

국가 - 필리핀

리그 - 필리핀 유나이티드풋볼리그(UFL)

1부 리그 - 12개 팀

2부 리그 - 임시 폐쇄

외국선수 규정 - 일반 3명 + 아시아쿼터 1명(교체명단 포함 총 5명)

클럽대항전 - AFC컵 동부 지역 2장(리그 우승팀, 컵대회 우승팀)

리그 강팀 - 세레스, 글로벌, 카야, 로욜라

스타 선수 - 제임스 영허즈번드, 필 영허즈번드, 스테판 쉬록


CERSEL001-1024x682.jpg

AFC컵에 참가한 세레스의 경기 모습

■ 개혁의 시작 - 외국인 제도와 연고지 정착

필리핀 리그는 오랜 기간 동안 아마추어 또는 세미프로 형태로 진행되어 왔다. 2010년에서야 리그다운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리그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부족하다. 역사가 짧은데다가 매해 일부 팀들이 해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연속성이 떨어지는 편이다. 게다가 필리핀은 농구의 나라다. 국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농구의 독보적인 인기가 축구 리그를 운영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걸림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순 없다. 더운 날씨, 경기장 부족, 지리적 어려움 등도 이겨내야 할 요소다.


필리핀 리그는 이러한 좋지 않은 조건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축구연맹(AFC)이 지원하는 ‘비전 아시아’ 정책에 따라 해마다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2016시즌부터는 외국인 제도를 보완했다. 5명에서 4명 동시 출전으로 규정을 바꾸면서 AFC 권고사항에 맞춰가고 있다. 리그 규정을 AFC 규정에 맞춰가고 있다는 건 발전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승강제는 2010년부터 부분적으로 시행됐으나 어려움이 컸다. 축구단 운영의 의지가 약한 팀이 강등을 당할 경우 해체를 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1부 리그 팀의 수가 매해 바뀌었다는 것만 봐도 리그의 불안정성을 알 수 있다. 그래서 2016시즌에는 2부 리그를 일시적으로 없앴다. 승강제가 정상적으로 운영이 가능하다고 판단했을 때 다시 2부 리그를 만들기로 했다. 이 역시도 발전적인 방향으로 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팬을 가장 많이 보유한 세레스

필리핀 리그의 가장 큰 문제점은 홈 구장과 연고지 개념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12개 팀 모두 연고지가 지정돼 있으나 큰 의미는 없다. 구단주의 고향 정도의 개념이다. 수천 개의 섬으로 구성된 나라이다 보니 원정을 떠나는데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다. 재정이 넉넉하지 못한 구단이 많아 경기마다 비행기를 이용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현재 모든 리그 경기가 수도 마닐라에 위치한 리잘메모리얼 스타디움에서 열린다. 팀에 대한 애정도가 낮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결국 팬들을 모으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필리핀 리그 측은 2017시즌부터 홈&어웨이 방식으로 연고지 중심의 리그를 치르려고 한다. 일단 마닐라에서 모든 리그 경기가 열리는 건 피하자는 게 1차 목표다. 그런데 리그 경기를 치를만한 시설이 각 팀의 연고지에 많지 않아 예정대로 이뤄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하지만 리그에는 모범 사례가 있다. 지난 시즌 리그 우승팀 세레스는 현재 홈 경기장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팀이다. 리그 경기는 마닐라에서 치르고 있으나, AFC컵 홈 경기는 연고지인 바콜로드에서 한다. 마닐라에서 비행기로 1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다. 


1만5500명을 수용하는 바콜로드의 파나드 스타디움은 매 경기 팬들로 가득 찼다. 50~100페소(약 한화 1200~2400원) 정도 하는 입장권은 구하기 힘들었다. AFC컵 3~4경기가 한 시즌 바콜로드 지역에서 열리는 축구 경기의 전부지만, 매번 흥행에 성공했다. 경기장 담장 너머에서 경기를 보는 사람도 많았다. 농구 팀이 없는 지역인데다가 구단주가 지역과 팀에 대한 애착이 강해 연고지 정착에 성공한 케이스다. 필리핀에서도 연고지 제도가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예다.


세레스의 경우 흥행과 함께 성적도 따라왔다. 2016 AFC컵 조별리그를 1위로 통과하면서 필리핀 팀으로는 최초로 16강에 올랐다. 필리핀 팀은 불과 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AFC컵에 나가지 못해 AFC소속 최하위 클럽대항전인 프레지던트컵에 출전했다. 하지만 이 대회가 2014년 폐지되면서 AFC컵으로 흡수됐다. 필리핀 팀이 AFC컵에 나가기 시작한지 2년 만에 16강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쉬록의 독일 그로이터퓌르트 시절

■ 다국적 리그 - 혼혈 중심으로 형성된 다문화

필리핀 리그는 자국선수로 분류된 혼혈선수들이 주도한다. 상위권 팀의 경우 베스트11의 절반 이상이 혼혈선수다. 대부분 어머니가 필리핀 사람으로, 아버지의 나라인 유럽이나 북미 등에서 태어나 축구를 시작했다. 비록 그곳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으나, 어머니의 나라로 건너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리그와 함께 필리핀 국가대표로도 활약하며 또 다른 성공을 준비하고 있다. 


선수들의 연봉에서 혼혈선수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 팀내 최고 대우는 대부분 혼혈선수다. 그 다음이 외국인선수다. 순수 자국선수의 경우 가장 낮은 연봉을 받는다. 필리핀에 거주하는 한 축구인은 “혼혈선수 가운데 최상위 수준은 1년에 한화로 1억 원에서 1억5000만 원 정도를 받는다. 모두 유럽에서 축구를 시작하고 배운 선수들이다. 보통 수준의 외국인선수는 5000만 원에서 7000만 원을 받는다. 1억 원 이상 받는 외국인 선수도 간혹 있다”고 설명했다. 


모든 외국인선수가 이와 같은 대우를 받는 건 아니다. 아프리카에서 넘어와 선수 경력이 부족하거나, 아시아에서 온 20대 초반의 어린 선수는 월 50만 원 정도를 받고 뛰기도 한다. 자국 선수들은 1년에 600만 원에서 1200만 원 정도를 받는다. 월급으로 환산하면 50만 원에서 100만 원 정도다. 필리핀 자국인이 대학을 나와 취업을 하면 받는 월급과 비슷하다. 다시 말해 필리핀 기업 초봉 수준이다. 


영허즈번드 형제

리그 최고 스타 역시 혼혈선수다. 로욜라에서 뛰고 있는 영허즈번드 형제는 전국민의 지지를 받는 스타다. 잉글랜드인 아버지와 필리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형제로 나란히 첼시 유스팀에서 활약한 경력이 있다. 유럽에서는 성공하지 못했으나 2011년 뒤늦게 필리핀으로 건너와 리그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뛰어난 실력뿐 아니라 잘생긴 외모로도 알려져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린다. 이들 형제는 축구매니지먼트 게임 ‘풋볼매니저(FM)’ 게임을 하던 한 필리핀 축구팬의 제보로 필리핀축구협회와 인연을 맺었다. 제보를 받은 협회 측은 이들 형제에게 필리핀 국가대표를 제안했고, 2006년부터 대표팀 주축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세레스의 공격수 스테판 쉬록은 필리핀-독일 혼혈 선수다. 독일에서 태어나 그로이터퓌르트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10대 시절엔 독일 연령별 대표팀에 차출되기도 했다. 이후 호펜하임과 아인트라흐트프랑크푸르트 등을 거쳤다. 올 시즌엔 세레스에 임대 신분으로 와서 활약 중이다. 세레스의 마누엘 오트 역시도 1860뮌헨, 잉골슈타트04 등에서 활약하다 필리핀으로 건너온 선수다. 


이밖에도 스페인, 미국, 네덜란드, 스위스, 이탈리아, 벨기에 등에서 온 혼혈선수들이 리그에서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국적은 모두 같은 필리핀이더라도, 출생지에 따라 사고방식부터 다르다. 여기에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선수와 순수 자국선수까지 더해져 여러 가지 문화가 공존하는 분위기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선수들끼리 어울려 다니다가도 다 같이 모였을 땐 영어로 대화하는 묘한 리그다. 


필리핀 리그 경기 모습

■ 저해 요소 - 자국선수 입지와 열악한 리그 환경

혼혈선수의 활용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순수 자국선수들이 성장할 기회를 빼앗아가는 측면도 있다. 게다가 현재까지도 소속팀이나 대표팀에서 자국선수와 혼혈선수가 완벽하게 어울려 있는 구조가 아니다. 혼혈선수의 경우 자신을 필리핀인이 아닌 외국인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필리핀에서 살았던 선수들이 아니다보니 문화적 차이는 여전히 존재한다. 


실력적으로 부족한 자국선수들이 많은 기회를 얻지 못하다보니 경쟁력도 뒤떨어졌다. 프로의식도 아쉽다. 이들은 주전 경쟁에서 밀리면 살아남으려는 의지를 보여주기보다 포기하는 쪽에 가깝다. 2014년부터 2년간 필리핀 리그에서 활약하다 독일 장크트파울리 23세 이하(U-23)에 입단해 활약 중인 박이영은 “국가대표급이 아니면 월급이 많지 않아 축구 외에 다른 일을 하는 선수들도 있다. 한국인 지도자에게 배운 필리핀 자국선수들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다부지지 못한 편이다”면서도 “이들의 잘못이라기보다는 혼혈이나 외국인 선수가 많아 기회를 얻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자국선수와 혼혈선수의 실력차가 크다보니 혼혈선수가 몰려 있는 상위 4개 구단만 잘나갈 수밖에 없다. 상위 팀과 하위 팀이 만났을 때 16-0이라는 점수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리그를 원활하게 진행하기엔 심판의 수준도 떨어지는 편이다. 경기장 안에서 카리스마가 없다. 쉽게 말해 심판 치고는 너무 순하다. 선수들이 강하게 어필하면 판정이 오락가락해진다. 선수들도 이러한 점을 이용하기 위해 더욱 강력하게 항의를 한다. 


최근에는 시설 문제가 화두다. 지난 6월에는 모든 리그 경기가 열리는 리잘메모리얼 스타디움의 조명 시설이 고장 났다. 그래서 한 달 가까이 저녁경기가 불가능해졌다. 임시방편으로 경기 시간을 옮겼다. 오후 2시 45분과 오후 5시 경기가 열린다. 33도에 이르는 무더운 날씨와 함께 뙤약볕 아래서 경기를 한다. 모든 경기를 치를 수 있는 스케줄이 나오지 않자 하위권 팀의 경기를 오전 8시 30분에 치르기도 했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프로리그라고 하기엔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손용찬의 경기 모습

■ 필리핀 속의 한국인 - 손용찬

손용찬(25)은 세레스에서 3년째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다. 현재 필리핀 리그에서 뛰고 있는 한국선수 10여명 가운데서는 필리핀에서의 경험이 가장 많은 편이다.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나 측면 수비수로 출전한다. 


그는 자신을 ‘행복한 3류 선수’라고 소개했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손용찬은 “걸어온 길을 보면 3류가 맞다. 그런데 친구들 사이에서는 가장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축구를 하는 행복한 선수라고 불린다. 축구를 하면서 몰디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여행지에 가는 선수가 몇이나 있겠는가. 나쁜 의미가 아니라 나의 현재 상황을 잘 설명하는 말이다”며 웃었다. 


손용찬은 남태희(레크위야), 김도혁(인천유나이티드), 최영준(안산무궁화) 등과 초등학교 동기다. 진주봉래초등학교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첫 포지션은 풀백이나 윙백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축구를 늦게 시작했거나 기술이 부족한 선수가 섰던 포지션이다. 이후 함안중학교, 경남정보고등학교, 한국국제대학교를 거쳤다. 그는 스스로를 애매한 선수라고 말했다.


팀 동료에게 장난을 치는 손용찬

결국 대학교 3학년 때 축구부를 나왔다. 조기축구를 하며 대학에서는 일반 학생 신분으로 수업을 들었다. 그래도 축구는 계속 하고 싶었다. 실업축구 내셔널리그 공개테스트에서는 모두 서류에서 탈락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손용찬은 “공개테스트가 열리는 지역으로 하루 먼저 가서 주위를 둘러본 이후 게스트하우스에서 잤다. 그리고 다음날 테스트 장소로 향했다. 서류에 통과하지 못했으니 당연히 테스트 명단에도 없었다. 그래도 부탁을 했을 때 웬만하면 테스트 경기에 뛸 수 있게 해줬다. 그렇게라도 높은 수준의 선수들과 같은 곳에서 공을 차고 싶었다”고 했다. 


카타르에도 갔다. 어느 한 팀에 테스트 승낙을 받고 카타르로 향했으나, 그 사이 팀 감독이 바뀌어 난처한 상황에 놓였다. 새 감독이 당장 운동장에서 나가라며 쫓아냈다. 그는 훈련장을 떠나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에 훈련장 주변을 뛰면서 눈물을 흘렸다. 호주 2부 리그에도 직접 찾아갔으며 태국, 네팔 등 당시만 하더라도 많이 가지 않던 리그에 문의도 해봤다.


소속 없이 떠돌던 2014년 1월, 필리핀에서 연락이 왔다. 당시 세레스를 이끌었던 차승룡(현 양평FC 감독) 감독이 필리핀에서 뛰는 한국선수들을 통해 ‘성실한 선수’를 찾았다. 친구가 손용찬을 추천했다. 그게 인연이 돼서 3년째 세레스에서 활약 중이다. 필리핀 첫해에 2부 리그 우승을 도왔다. 2015시즌엔 1부 리그 우승까지 차지했다. 2016시즌엔 필리핀 대표 팀으로 AFC컵에 나가 16강까지 올랐다.


필리핀에서 별명은 ‘머신’이다. 기계처럼 많이 뛰기 때문이다. 현지에서는 손용찬이 하는 역할을 ‘더티 잡(Dirty Job)’이라고 표현한다. 한국말로 바꾸면 ‘궂은 일’ 정도다. 손용찬은 “한국에서는 모든 선수가 열심히 한다. 그러면 타고난 선수가 앞서게 된다. 나는 타고난 게 없다. 체력이 가장 자신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죽어라 해봐야 2~3등 정도였다”며 “이곳에서는 다르다. 모든 선수가 열심히 하진 않는다. 그래서 내 노력이 조금 돋보일 수 있다. ‘노력도 타고 난 것이다’라는 아버지의 말이 처음으로 와닿았다”고 했다. 


AFC컵을 위해 몰디브를 방문한 손용찬과 동료들

긍정적인 성격도 적응에 큰 도움이 됐다. 한국에서 여행하듯이 테스트를 받으러 다녔던 시절 덕분에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뀌었다. 손용찬은 “어릴 땐 테스트 받고 싶다는 전화를 할 때마다 손을 떨었다. 그런데 하다 보니 별게 아니더라. 모든 걸 내려놓고 도전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했다. 


필리핀에서는 인기 선수다. 지난해에는 리그 올스타에 뽑히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손용찬은 “한류 덕분에 인기가 좋은 편이다. 외국인 선수들이 지역 학교를 돌면서 홍보 행사를 하는데 ‘한국 선수’라는 이유만으로도 큰 환영을 받는다. 코리아라는 한 단어만으로도 인기를 얻을 수 있다”며 웃었다. 필리핀 리그 3년차 손용찬도 경쟁은 피할 수 없다. 외국인 선수 출전이 4명으로 줄어들면서 더욱 치열해졌다. 손용찬은 “최근 감독이 바뀌었다. 그때마다 경쟁은 치열해진다. 우리 팀의 경우 외국인선수만 총 7명이다. 게다가 혼혈선수도 많기 때문에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손용찬은 AFC컵을 경험하면서 더 큰 꿈을 갖게 됐다. 싱가포르 템파인로버스FC와 한 조에 편성돼 한때 프리미어리거였던 저메인 페넌트를 전담마크했다. 손용찬은 “AFC컵이라는 국제 무대를 뛰어보니 AFC챔피언스리그도 꿈꾸게 되더라. 필리핀에서 조금 더 내공을 쌓은 이후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 꼭 그것이 좋은 리그로의 진출은 아닐 수 있다. 여행을 하듯이 세계 곳곳에서 도전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비오는 가운데 치러지는 경기

■ 필리핀 진출 - 축구만 하기엔 아까운 나라

필리핀 리그에는 현재 10여 명의 한국 선수가 있다. 대부분 대학을 졸업하고 온 어린 선수들이다. 한국 운동선수에 대한 인식이 좋은 편이라 어느 정도 실력만 보여준다면 팀을 구할 수 있는 분위기다. 


하지만 팀 간의 격차가 크기 때문에 고민은 필요하다. 세레스, 글로벌, 카야, 로욜라 등 상위 4개 팀이 아니라면 대우가 열악하다. 축구만 보고 가서는 실망감만 얻어올 수 있다. 손용찬은 “돈을 보고 오기에는 애매하다. 오랜 기간 동안 뛰며 스스로의 가치를 올려야하기 때문에 단기간에 거쳐 가는 리그로는 부적절해 보인다”면서도 “이곳에서는 시간이 많다.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 축구를 하면서도 여유 있게 살고 싶다면 나쁜 곳은 아니다. 언론에서는 위험하다고 나오지만 느끼는 건 다르다. 어느 나라나 그렇듯 위험한 곳만 가지 않는다면 안전하고 평온하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언론에 보도되는 강력 사건은 주로 위험한 지역이나 사업적인 원한 관계로 인해 발생한다. 언론을 통해 느껴지는 위험도와 실제 생활은 크게 다르다.선수들은 굉장히 안전한 환경 속에서 지내고 있다. 


필리핀 리그를 2년간 경험한 박이영도 “고등학교 졸업생 신분으로 필리핀에 왔다. 처음 6개월은 영어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그 시간이 없었더라면 유럽에 도전도 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외국인들과 어울려 지내는 방법도 처음 알았다. 한국에서 대학을 갔더라면 알 수 없는 경험이다. 독일에 와보니 필리핀에서 축구 외에도 정말 많은 걸 배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박이영이 필리핀에서 활약하던 모습

필리핀은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해 준비하는 리그로 알맞다. 꼭 선수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사는데 있어서 많은 걸 얻어갈 수 있는 기회의 땅이다. 손용찬은 “자기계발을 하기에는 좋은 곳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준비할 수 있는 나라인 것 같다. 조만간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공부할 생각도 하고 있다”며 “경기에 꾸준히 뛴다면 축구에서도 자신감까지 찾을 수 있다.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이것저것 다양한 플레이를 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발전해 있더라”고 말했다. 


필리핀 진출엔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게 아니다. 비시즌에 열리는 공개테스트에는 마음만 먹으면 참가할 수 있다. 현지에 있는 선수들을 통해서도 테스트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에이전트가 있긴 하지만 영향력은 그다지 크지 않다. 다만 영어가 관건이다. 스스로 테스트를 보고 다니면서 소통을 해야만 한다. 


필리핀 리그는 점점 발전하고 있는 곳이다. 지금 당장은 열악하더라도 축구 외의 것들까지 생각한다면 충분히 가볼 만한 곳이다. 필리핀은 손용찬의 말처럼 '1류 선수'가 되지 못하더라도 노력에 따라 '행복한 선수'가 될 수 있는 곳이다.


축구선수로서의 '성공'은 굉장히 주관적이다. 상위 리그에서 뛰고 있어도 행복하지 않은 선수가 있는 반면, 수준이 비교적 높지 않은 리그에서 뛰더라도 행복한 선수가 있다. 우리는 누가 더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정답은 없다.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사람들의 시선에 성공의 기준을 맞출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어디에서든지 스스로 즐겁다면, 그것이 곧 성공이고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편은 고속성장을 이룬 법과 질서의 나라, 싱가포르다. 이미 한국 지도자나 선수들이 들어가 성공을 이룬 곳이다. 이곳에서는 어떠한 축구 그리고 어떠한 문화가 있는지 알아본다. 


글= 김환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이매진스, 손용찬, 박이영

기사제공 김환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