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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그 이상의 소식/호이링_칼럼

만약에 통일이 된다면...우리나라 프로스포츠는 어떻게?

by 호이링 2012. 6. 21.

갑자기 발찍한 상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북한과 통일이 된다면 과연 우리나라 프로스포츠는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을 한번 상상을 는데. 현재 우리나라에서 운영중인 프로스포츠는 프로축구, 프로농구, 프로배구, 프로야구 정도일겁니다. 과연 통일이 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상상을 했는데..그냥 축구만 한번 살펴봤습니다.  





우선 축구를 살펴봤습니다 북한의 축구실력은 어느정도일까? 북한은 남자축구 피파랭킹은 86위이고, 여자축구피파랭킹은 5위안에 들어가는 강팀인것은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실제 북한은 월드컵 최초로 유럽과 남미를 제외한 대륙에서 처음으로 8강에 진출한 국가이고, 여자대표팀은 세계강호로서 인정을 받고 있는건 누구나 알수 있는 사실입니다. 그럼 북한 실업축구는 어떨까? 아래는  동아일보의 주성하 기자의 글의 내용입니다. . http://blog.donga.com/nambukstory


발췌

북한에도 리그제도가 있다. 교통사정 때문에 홈경기와 원정경기 형식은 아니지만 1년에 3단계로 나눠 한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경기를 치른다. 2월에 시작되는 만경대상대회는 4월에 우승자를 배출한다. 이어 7월에 토너먼트로 진행되는 기술혁신대회가 열리며, 9월에 리그전으로 치르는 공화국선수권대회가 있다. 3개 대회의 우승팀이 또 경기를 벌여 11월까지 최강자를 가리는데, 우승자가 겹치면 준우승자가 출전한다. 최종 우승자에게는 축구협회장컵과 함께 태국에서 열리는 킹스컵대회 출전권이 주어진다. 꼴찌팀 중 한 팀은 2부 리그로 강등된다. 1부 리그는 ‘최강팀경기’ 또는 ‘명수급리그’라고 한다. 시기마다 약간 달라지지만


1부 리그에는 보통 12개 팀이 소속돼 있다 4·25, 평양시, 기관차, 압록강, 월미도, 리명수, 용남산, 경공업성, 대동강, 소백수 등의체육단이 1부 리그의 고정 멤버다. 이 중 앞의 4개 체육단은 모든 스포츠 종목을 다 갖고 있는 특급 체육단이다.

 

또각 도 축구단 사이의 경기에서 1위를 한 팀이 매년 1부 리그에 올라온다. 도 축구단에서는 함북이 강팀이다. 국가대표팀과 청소년대표팀이 1부 리그에 참여해 경기를 하기도 한다. 경기 감각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2부 리그는 각 체육단의 2진과 도급 체육단이 소속돼 있다. 이런 식으로 북한에는 5부리그까지 모두 130개의 전문 축구팀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와...북한의 축구시스템은 5부리그까지 되어 있는것 같군요 어쨋든 전국의 130개팀이 각축을 벌이며 1부리그에 진출하기 위해 노력을 하는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의 프로팀(실업)과 북한의 실업팀이 붙은적이 있는지 찾아봤습니다. 



비공식적으로 인천유나이티드와 425축구단이 작년에 경기를 한 것으로 나오네요 이외의 프로나 실업팀과의 교류는 간헐적으로 있는것 말고는 자료는 거의 없네요... 



고려대와 425축구단의 경기모습

 고려대와 425축구단의 경기모습


4.25축구단 모습

국가대표팀 경기는 가끔씩 저희들이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북한축구에 대해 어느정도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안영학 선수가, 부산과 수원에서 뛰기도 했고, 정대세 선수가 우리나라 언론과 수시로 인터뷰를 해서 많은 걸 알수 있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스위스의 바젤에서 뛰고 있는 박주호 선수를 통해  바젤팀에 북한 선수 박광호 선수가 뛰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습니다. 


지금 유럽에서 활약하고 있는 북한선수들이 누가 있을까요? 제가 찾아봤습니다. 조총련계 소속의 선수들까지 하면 북학국적의 외국진출선수는 상당한것 같습니다. (정대세[정대세는 조총련계는 아니죠], 안영학 등)

 

  • 박광룡 선수
  • 1992년 9월 27일생
  • 평양월미도 체육단에서 축구를 시작해서 스위스 2부팀인 FC빌에서 유럽생활을 시작했으며, 최근에 1부 FC바젤에서 뛰며 챔피언스리그까지 뛰었던 선수입니다. 
  • 현재 박주호 선수와 함께 FC바젤을 이끌고 있어요

  •  홍영조
  • 1982년 5월 22일생
  • 2007-2008 시즌에 러시아의 메리디안 수페리가에서 FK베자니아 베오그라드 팀에서 뛰었습니다. 그후 러시아 FK로스토프팀에서 2008년부터 2011년까지 공격스로 뛰기도 했습니다. 

  • 최명호
  • 1988년 7월 3일생
  • 미드필드로 2005년 17세 이하 월드컵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여 이를 인정 받아 AFC 최우수 유망주상을 받았습니다. 
  • 2006년 러시아 크릴리야 소베토프로 이적을 했지만 3년간 1경기만 출장한 뒤 2009년에 북한으로 돌아왔습니다. 지금은 평양시체육단 소속 축구선수로 뛰고 있습니다. 


  • 차정혁
  • 1985년 9월 25일생
  • 수비수로서  압록강체육단에서 뛰다가 2010년 스위스 빌로 이적을 했습니다. 이후 정확한  출장기록은 없네요


자 북한 실업축구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여러분은 기억을 할 겁니다. 대한민국이 스포츠로서 한나가 되었던 그 순간 바로 탁구와 축구였습니다. 탁구는 최근에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영화로 개봉되었던 적이 있었죠 1991년 4월 제4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우리 여자복식조가 중국을 3-2로 꺽고 시상식상장에서는 '아리랑'이 울려펴지는 가운데 한반도기가 가장 높은 자리에 게양되었고 그리고 또 하나 1991년 포르투칼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선권대회(20세이하)에서 남북단일팀으로 출전해서 강호 아르헨티나를 꺽고 8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그때는 우리는 하나였죠



조진호와 볼경합 장면

정강성의 골 장면



아래글은  송기룡의 푸른시절 블로그 http://blog.daum.net/skr0814/497497

에서 퍼온 한국축구 명승부(1991년 세계청소년대회 VS 아일랜드)에서 발췌했습니다. 


1991년 6월 포르투갈에서 열린 제 6회 세계 청소년 대회에는 한국 축구 사상 처음 으로 남북 단일팀 <코리아>가 참가했다. 1년전인 1990년에 열린 아시아 청소년 축구 대회에서 한국이 우승, 북한은 준우승을 차지함으로써 두 팀다 세계 대회 출전 자격을 따냈다. 그러자 단일팀을 구성해서 나가자는 여론이 형성됐고 때마침 불어온 통일열기속에 일사천리로 협상이 이루어져 마침내 <코리아> 팀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아일랜드, 그리고 개최국 포르투갈 등 강팀과 같은 조에 속하게 되는 바람에 조별리그 통과를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외신조차도 "남북이 합친 코리아는 그 의미가 빛나긴 하겠지만 대회 참가에 만족해야 할 것"이라고 비아냥거렸다.  그러나 통일을 위해 달리는 남북의 어린 선수들에게 하늘도 감동해서 힘을 불어 넣어준 것일까. 1차전에서 우승 후보인 강호 아르헨티나를 1 대 0으로누르는 파란을 일으켰다. 종료 2분전 북한 출신의 조인철이 절묘한 30미터 롱슛을 성공시켰습니다. 


6월 18일 코리아의 2차전은 유서깊은 리스본의 벤피카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상대는 아일랜드. 이 경기에서 최소한 비겨야 8강 진출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 하게 된다. 아르헨티나를 격파한 코리아에 관심이 생겼는지 경기장엔 3만여명 의 관중이 운집했다.코칭 스탭은 예상대로 수비진은 남한 선수들로, 공격은 북한 선수 위주로 스타팅을 짰다. 당시 한국의 고유 유니폼 색상은 아래위 붉은색, 북한은 아래위 흰색이었지만 여기서도 조화를 발휘해서 코리아팀은 상의 흰색, 하의는 붉은색을 입었다. 가슴엔 파란 한반도 지도가 그려진 코리아 깃발을 새겨넣었다.  1차전 승리의 여세를 몰아 초반 코리아가 기세좋게 밀어 붙이기 시작했다. 발바리 조진호가 부지런히 그라운드를 누비고 조인철,정강성의 볼배급도 좋았다. 그러나 15분 정도 지나자 주도권이 아일랜드 쪽으로 서서히 넘어갔다.

개인기 위주의 남미 축구엔 강하지만 체력과 스피드를 앞세운 유럽 축구엔 힘을 못쓰는 것이 한국 축구의 약점. 사이드에서 날라오는 크로스를 걷어내기만 할뿐 더 이상의 전진 패스가 이루어지질 않았다.  미드필더들이 수비에 치중 하느라 전방 돌진을 못한 것도 이유였다.  행운의 징조는 있었다. 전반 20분 아일랜드의 결정적 헤딩슛이 크로스바를 맞고 나오고, 25분엔 조진호가 공격중 컨트롤 미스로 볼을 놓쳤으나 볼은 떼굴떼굴 굴러 코너 깃발에 맞고 다시 조진호에게 돌아온 것.하지만 위기는 계속됐다.  전반 41분엔 주장 이태홍이 역습을 시도하다 뺐겨 상대 공격수가 우리 골키퍼와 맞서는 1대 1 절체절명의 위기를 허용했다. 주전 수비수 이임생의 공백이 크게 느껴졌다. 이임생은 아르헨티나전에서 경기후 상대 공격수 에스나이더와 싸우는 바람에 1경기 출장 정지를 당했던 것. 

 어수선한 분위기는 후반에도 이어져 결국 56분 선제골을 허용하고 만다. 오른쪽 페널티 에리어 부근에서 강철이 상대 공격수 진로를 방해해 프리킥을 허용했고,  문전으로 날아온 프리킥을 놓치지 않고 매카시가 때려 넣었다.


이대로 지고만다면 아르헨티나전 승리도 물거품이 된다. 그러나 나이답지 않게 코리아 선수들은 오히려 실점후에 냉정함을 찾았다. 

미드필더들의 공격 참가가 늘어나고 패스가 차근차근히 이어졌다. 후반 중반 투입된 최영선(북한)은 상대 진영을 휘저으며 조진호, 김정만, 최철에게 잇따라 슈팅 찬스를 만들어 주었다. 종반에 가까워지자 경기는 더욱 불꽃을 튀었지만 코리아 선수들의 얼굴에는

긴장의 빛이 역력했다. 후반 35분 오른쪽에서 날아온 크로스가 조진호에게 이어졌다. 골키퍼와 단독 으로 맞선 상황에서 조진호가 쓰러지며 헤딩슛을 쏘았다. 그러나 공은 무정하게도 골포스트를 스치고 지나갔다. 조진호는 엎드려 일어날 줄을 몰랐다. 중계해설하던 신문선이 울먹이며 말했다. "엎드려 땅을 치는 조진호의 모습이 금 남북 7천만 겨레의 심정입니다" 주도권은 완전히 코리아로 넘어오고 혼신의 힘을 다한 슈팅이 작열하지만 번번히 골문을 벗어난다. 시계는 후반 44분을 향해가고 있었다. 리창하가 스로인을 하는 순간 송재익 캐스터가 말했다. "기적같은 일이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요"   잠시후 기적이 벌어진다. 오른쪽 미드필드에서 정강성이 전진패스를 보내고 이를 받은 최영선이 수비를 등진 상태에서 페인팅하며 사이드 돌파에 성공한다. 이어 가운데로 크로스,  그러자 최철이 골에리어 정면으로 달려들며 오른발 발리슛,  공은 아일랜드 골키퍼 코널리의 손끝을 스치고 네트로 빨려 들어갔다.

1 : 1동점골! 후반 44분 40초였다. 남북의 선수들은 환호하는 최철을 따라 그라운드를 달려가더니 전부 한덩어리 가 되어 쓰러졌다. 완전한 통일을 이루는 순간이었다.


위의 글을 보고 있으면 정말 그때의 아찔한 순간이 생각이 납니다. 하지만 하나된 코리아가 해냈던 그 짜릿함을 축구로 대신했었던거죠 ^^ 어떤 스포츠가 해내지 못한 것을 이룬것입니다. 

 

1991년 포루투칼 세계청소년세계선수권대회 30m 골


만약에 통일이 된다면 축구의 역활이 더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일부 프로스프츠 처럼 일부 국가에서만 하는 것이 아닌 축구는 전세계적으로 하고 있고 북한도 예외는 아닙니다. 현재 북한에서도 5부 리그를 운영할 정도의 팀들이 존재하고, 북한 실업팀과의 자연스러운 교류를 통해 오랜 기간 동안 단절되었던 한민족의 정서를 이어주는 매개체가 될 수 있을것으로 예상합니다. 다


. 농구도 마찬가지입니다. 농구도 북한에서는 활성화되어 있죠, 배구도 꾸준히 노력한다면 통일된 한국에서 정말 가치 있는 프로스포츠로 자리매김을 할겁니다. 하지만 야구는 통일이 되면 반쪽짜리 스포츠가 될 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선 야구를 하는 국가가 많지도 않을뿐더러 북한은 야구를 무척 싫어하기 때문이죠, 통일이 되어서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모르겠지만, 축구나 농구처럼 현재 활성화되어 있지 않은 스포츠를 대한민국의 수준으로 올린다는 것은 정말 어려울 듯합니다. 


단절된 역사가 긴 만큼 그 자리를 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자리를 인위적으로 할 수는 없을겁니다. 스포츠라는 매개체는 충분히 그 단절의 역사를 매꾸기에 정말 좋은 매개체가 될 수 있을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전에 2번의 경험을 했습니다. 하나가 되는 기분이 어떤것이라는 걸...탁구와 축구를 통해서..


탁구 복식경기 모습

시상식 장면




통일한국에서 열리는 축구를 통해 진정한 스포츠의 역활이 뭔지 느껴보고 싶습니다. 어서빨리 통일이 되어, 진정한 클럽의 경평전을 보고싶습니다. 대한민국의 축구가 발전되는 그날까지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