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의 동철(가명)이는 학업을 등한시 하면서
또래 애들과 야간에 어울려 다니며
집단으로 학교폭력을 행사해 장기보호관찰을 받게 됐다.
동철은 신고할 당시 장래 희망은 ‘아무것도 없고
그냥 시간이 흐르면 먹고는 살 수 있지 않겠냐?’며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체념하듯이 대답을 하며
보호관찰을 시작하였다.
보호관찰을 시작한 후 2개월간 수시로 외박을 하고
불량친구들과 담배와 술을 접하면서 무절제한 생활을 했고,
심지어 면허가 없는 상태에서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는 경우가 잦았다.
동철이는 10일간 장기 결석을 하면서 무단가출을 하였고,
엄마에게 돈 15만원이 필요하다며 욕을 하고, 집안의 물건을 부수는 경우가 잦았다.
그러던 중, 오토바이를 무면허 운전하다
전치 12개월의 오토바이 사고가 났고,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을 할 처지에 처했다.
보호관찰 담당자로서 동철이의 무면허 운전과,
주거지무단이탈 등의 보호관찰 준수사항위반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병원을 찾아갔고,
병원에 입원한 동철이는 친구 3∼4명이서 모여
만화책을 보며 웃고 있었다.
나는 같이 모여 있는 친구들에게 화를 내며
나가라고 했고, 동철이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의사의 말로는 다리뼈가 부러진 것이 아니고
으스러져 최소 7개월 정도
병원에 입원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동철이에게 “많이 다쳤구나? 뭐 하러 오토바이를 탔냐?
선생님이 너 오늘 무척 혼내려고 왔는데 오늘은 혼내지 않겠다.
당분간 선생님이 2주마다 병원에 올테니 병원에서 치료에 전념해라.”하고 병원을 나왔다.
그리고 2주마다 병원을 방문할 때마다
친구들이 하나 둘씩 안보이기 시작하다
1개월이 지나자 동철이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시무룩한 동철이에게 “친구들은 어디 있니?”라고 묻자,
동철이는 “친구는 더 이상 내 주변에 없어요.
처음에는 친구들이 병문안도 많이 오고 했는데
이제 귀찮은지 오지를 않네요…
친구가 인생에서 제일이라고 생각을 했는데…”라며
이군은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동철이는 삶의 목표를 잃은 모습이었다.
나는 동철이에게 책 2권을 사주면서
“앞으로의 계획은 차츰 생각해보자.
아직 시간이 있잖아.”라며
동철이를 혼내는 것보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줬다.
그리고 다시 2주가 지나 병원을 찾아갔다.
동철은 나를 보며 환하게 웃으며
“선생님 오셨어요? 저 때문에 고생이 많으시네요…
그래도 보호관찰 때문이지만
병문안 오는 사람은 선생님뿐이네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선생님! 지난 2주 동안 많은 것을 생각했어요.
엄마도 아프고 아빠도 아프고, 간질 증세가 있는 형을 보니
앞으로 살아야 할 날에 대해 고민을 해봤어요.
솔직히 다리 다치기 전에는 친구가 전부라고 생각을 했고,
어른이 되면 막노동 하며 살면 그만 아니겠냐고 생각했어요.
근데 다리를 다치고 나서 앞으로 장애를 갖고 살지 모르는 상황에서
나를 걱정해주며 울고 있는 엄마 아빠와 형을 보고 가족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앞으로 육체 노동은 힘들겠다는 생각을 해봤고,
공부를 해서 의사가 되고 싶어요.”
당시 갑자기 변한 동철이를 보고 놀랐지만
소년에게 힘을 주고 앞으로 하겠다고 변하는 모습이 중요함을 격려해줬다.
하지만 동철이는 장기 결석으로 학교 당국의 퇴학결정이 된 상태였고,
학업성취도 수준이 초등학교 6학년 수준으로 고등학교 정규과목을 정상적으로 이수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보호관찰소에는 지역 학원으로부터 재고나 사용한 교과서와 참고서를
무상으로 기증을 받았고, 그 중 중학교 과정에 맞는 참고서 50여권을 추려 동철이에게 지원했다.
“인생은 계단과 같아서 한 번에 오르려면 힘이 많이 든다.
중학교 과정도 좋으니 차근 차근 공부를 시작하도록 해라.
그럼 지금은 더딜지 모르지만 어느새 목표 앞에 도달해 있을거야.
그리고 지금 의사가 되겠다고 목표를 잡는 것은
네가 그것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나중에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보면
의사 아닌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을 볼 수 있을거야.”
동철이는 경제적으로 어려워 4개월만에 퇴원을 하게 되었다.
집에서 통원치료를 받으면서 보호관찰소에서 지원한 책으로 공부를 하고
중학교 과정을 어느 정도 마스터 한 뒤에는
보호관찰소에서 고등학교 과정의 교과서와 참고서를 무상으로 지원해줬다.
그리고 지역사회자원으로부터 지원 받는 원호금 등을 우선적으로 지원하여
학원비와 병원비 등을 보조하며 생활을 독려했다.
그렇게 보호관찰 기간 2년이 경과되면서 동철은 아쉬운 마음으로 작별을 고하고
나중에 멋있는 모습으로 다시 선생님 앞에 보이겠다고 한 뒤 헤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2년이 지난 어느 날 휴대전화로 한통의 전화가 왔다.
“선생님! 저 동철이에요.
저 검정고시 합격하고
4년제는 아니지만 2년제 대학을 합격했고
4년제에 도전하기 위해 계속 공부하고 있어요.
근데, 선생님!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세요?”
“오늘? 오늘이 무슨 날인데?” 나는 반문했다.
“선생님! 오늘은 5월 15일 스승의 날이에요.
선생님은 학교에서 절 지도해 준 적은 없지만
제 인생에 있어 스승입니다.
저를 이렇게 해준 스승님 감사합니다.
꽃을 꼽고 인사를 드려야 하지만
이렇게 전화로 드립니다.
나중에 좀 더 좋은 모습으로 다시 뵙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짧은 통화였지만 가슴이 찡한 전화였다.
‘나를 기억하고 스승이라고 말을 하다니… 정말 보호관찰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라고
생각을 했다. 그 후 매년 5월 15일 전화가 왔다.
내가 휴대전화 번호를 바꾸면서 마지막 통화를 한 뒤 더 이상의 전화는 오지 않지만…
동철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보니,
동철이는 의사를 목표로 4년제 대학 진학을 준비했지만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계속 공부를 하지 못하고 2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중견기업에 취업을 하여 회사일을 하고 있다.
누군가를 변화시키기는 어렵지만 스스로 변화하고자 할 때
꼭지점 역할을 하며 큰 바탕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힘이 보호관찰에게는 있다고 느꼈다.
내가 한 것은 없다. 하지만 노력하려는 동철이에게 한 꼭지점을 주고
그렇게 변화된 동철이를 보면서 이 업무의 가치를 느꼈다.
동철이가 의사는 되지 않았지만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며
우리와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보호관찰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 이글은 보호관찰대상자, 소년원생, 출소자관련 선도 및 미담사례를 담은 2012년 특별한 인연, 아름다운 사람들에 실린 <보호관찰관은 스승이다>를 편집해 정리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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